영화 '승리의 시작' 특별 추가 상영 안내 신청 링크: https://forms.gle/AYLK93qFuUJySWTJ8 백선엽 장군의 삶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명한 영화 《승리의 시작》이 오는 7월 19일(토) 오전 10시, CGV 왕십리에서 상영됩니다. 18일(금)에 예상보다 많은 분들께서 신청해주신 덕분에, 더 많은 분들께 기회를 드리고자 19일(토)에도 무료 관람 기회를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트루스포럼을 통해 신청한 분들은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선착순 35명을 모시고 있습니다. 서둘러 신청해 주세요!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귀한 자리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문의 : 010-9099-3379)
*서울대 트루스포럼 특별강연 안내 강사: 모스 탄 Morse Tan (전 미 국제형사사법 대사) 일시: 2025년 7월 15일(화) 오후 5시 장소: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마로니에홀 선거는 공공의 것이고, 선거에 대한 국민의 검증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지난 대한민국 대선의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트루스포럼은 트럼프 1기 국제형사사법 대사를 역임하신 모스 탄 대사님을 직접 모시고 특강 및 간담회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모스탄 대사님은 현재 주한 미국대사 후보로 논의되고 있는 분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참가인원 확인을 위해 가급적 사전등록을 부탁드립니다. - 사전등록을 못하셨더라도 행사당일 현장에 오시면 됩니다. 사전등록
영화 '승리의 시작' 특별 상영 안내 신청 링크: https://forms.gle/XcnxTt1Rc9Mkv4of9 백선엽 장군의 삶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명한 영화 《승리의 시작》이 오는 7월 18일(금) 저녁 7시, 필름포럼 극장에서 상영됩니다. (문의: 02-363-2537) ️ 상영 후에는 감독과의 특별한 대화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트루스포럼을 통해 신청한 분들은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선착순 등록이니 서둘러 신청해 주세요!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억하는 귀한 자리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
[ 트루스포럼 월요모임 안내 ] 7월 7일(월), 트루스포럼 월요모임은 청년토론과 Truth Action으로 진행됩니다! 통합진보당 해산판결문 발췌문을 정독한 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예정입니다. 발췌문은 원본 판결문 중 이석기 내안관련 회합 부분을 따로 뽑아 정리한 내용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 공대한 판결문의 원본은 편집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읽기 어렵습니다. 내용도 방대합니다. 하지만 공신력이 있는 자료이고 또 재판을 통해 확인된 주옥같은 내용들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함께 발췌문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미리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발췌문 : https://www.truthforum.kr/0401/10 )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리며, 모임 전 후로 즐거운 교제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청년모임으로 진행합니다. 일시: 7월 7일 (월) 오후 7시 장소: 트루스포럼 서울대센터 <오시는 길>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했던 신정통주의, 복음주의. 왜 이상해 지고 있나? https://www.youtube.com/watch?v=w07NA... 1.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과 본질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우리가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 이성 절대주의, 합리주의, 이런 사조가 계몽주의와 함께 강화되면서 신학에도 이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뭐냐? 성경 말씀을 인간의 이성과 감정, 경험을 바탕으로 재단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 같은 것들은 다 헛소리가 되는 거죠. 2. 내러티브 가스펠, 설화로 전락한 복음의 위험 결국 다 책 팔아먹으려고 만든 ‘내러티브 가스펠’이 되는 겁니다. 설화적인 복음, 말 그대로 이야기로 전락하는 거죠. 예를 들어, 동정녀 탄생? 말도 안 되는 거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다 ‘구라’로 보는 거고. 십자가의 대속?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부활? 더더욱 말도 안 되는 거라는 겁니다. 3. 나치와 자유주의 신학의 관계 여러분,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창궐할 때, 당시 독일 신학계를 주도하던 신학이 바로 이 자유주의 신학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치가 가톨릭 교회, 기독교인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나온 거다”라고 하시는데요, 히틀러는 가톨릭 신자도 아니었어요. 나치의 세계관은 어떤 것이었냐면, 예를 들어 '토르' 아시죠? 천둥의 신. 이런 게르만 민족이 가진 신화적 상상, 요정 같은 요소들, 이 모든 것은 기독교와 배치되는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게르만 남성성’을 거세했다는 불만이 있었거든요. 사랑, 자비 이런 걸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민족적 본성을 억눌렀다고 본 거죠. 이런 신화적 상상이 나치의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일부 교회가 나치에 부역한 건 사실이지만, “기독교가 타락해서 나치가 나왔다”는 식의 단정은 잘못된 겁니다. 명확하게 구별하셔야 합니다. 당시 독일 교회가 나치 정권의 등장을 방조했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신학을 지배하던 것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었습니다. 4. 경건주의의 한계와 침묵 신학이 힘을 잃으면 그렇게 됩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게 ‘경건주의’예요. 경건주의, 말은 좋지만, “난 경건하게 살래” 하면서 산으로 가버립니다. 목소리를 내야 할 크리스천들이 사라져버린 거죠. 그래서 신학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는 겁니다. 5.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연대 자유주의 신학은 앞서 말한 대로 인간의 이성과 감정,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재단합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흐름이죠. 여기에 진화론까지 기승을 부리니까, 자유주의 신학은 “언제까지 신학이 과학을 배척할 거냐?”며 진화론까지 흡수하려고 듭니다. 6. 근본주의, 복음주의, 신정통주의의 등장 이런 흐름에 맞서 대항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로, 유럽에서는 ‘신정통주의’로 대응이 나타났습니다. 칼 바르트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죠. 7. 신정통주의의 문제와 칼 바르트 비판 그런데 문제는, 이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신정통주의나 복음주의가 점점 자유주의 신학을 닮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신학교들에 퍼져 있는 문제가 바로 이거예요. 이걸 여러분들께서 직시하셔야 합니다. 칼 바르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때 자유주의 신학이 주도하던 독일에서 초월적인 하나님, 계시의 우선성,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체계를 구축했다”고요. 그런데 칼 바르트에 대해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문제점들이 있다는 겁니다. 성경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게 아니라, 개인이 받은 계시를 통해 말씀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되면 계시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칼 바르트는 ‘이중 예정’을 부정합니다. 이중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에, 어떤 사람은 멸망에 예정하셨다는 교리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 수 있지만, 성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이 교리를 부정하면서 보편 구원에 대해 문을 열어둡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최후의 심판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또 그는 부활의 역사성을 희석합니다. 이를 단순한 계시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성과 인간 경험을 전면 부정하면서, 오직 계시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의 조명을 통한 인간 이성의 긍정적인 작용까지도 거의 다 부정해버리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게 바로 개혁주의 입장에서 칼 바르트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칼 바르트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내가 믿으니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주관적 실존주의를 주장했죠. 이런 주관주의적 실존주의를 칼 바르트도 기본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내가 믿으니까 부처도 존재한다”는 식으로 상대주의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결국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신정통주의가 다시 자유주의 신학에 문을 열어주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겁니다. 이게 지금 장로교가 처한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실존주의의 아버지라면, 그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빼버린 채 세속화된 실존주의를 만든 사람이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입니다. “나의 실존이 곧 전부다”는 식이죠. 8.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구분 신정통주의는 지금 장로교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근본주의’, ‘복음주의’가 있었는데요, 저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걸 근본주의라고 하면 근본주의자고, 복음을 체계적으로 전하는 걸 복음주의라고 한다면 복음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신앙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근본주의는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경향이 있었고, 복음주의는 이성적, 학문적 접근, 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문제는, 복음주의가 그런 접근을 하다가 자유주의 신학에 다시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9. 프린스턴, 웨스트민스터, 풀러신학교의 흐름 역사를 보면 프린스턴 신학교, 이승만 대통령이 졸업하신 그 학교는 원래 장로교가 세운 보수적 신학교였는데, 1920년대 후반부터 자유주의 신학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비판하고자 1929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설립됩니다. 이 신학교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적으로 다양한 흐름으로 나뉘게 되는데, 메이천 교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견해 차이가 생기면서 칼 맥킨타이어 같은 분은 더 강경한 근본주의 노선을 택해 독자 노선을 걷게 됩니다. 1947년에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플러신학교가 갈라져 나오는데요, “웨스트민스터는 너무 경직돼 있다”는 이유로 오켄카 같은 인물이풀러신학교를 세웁니다. 10. WEA와 트루스포럼의 입장 이후 이 흐름은 신복음주의, 포스트 이반젤리컬리즘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전국 복음주의협의회를 만들고, 세계적으로는 WEA(세계복음연맹)라는 이름으로 확장됩니다. 이런 배경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예를 들어 오정현 목사님이 WEA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트루스포럼은 근본주의적 색채를 가진 조영엽 박사님 같은 분도 초청했고, 김상복 목사님처럼 WEA 한국 대표를 하셨던 분도 트루스포럼을 지지해 주십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영향으로 힘든 시간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극동방송에서 김상복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분명히 정리하고 선을 긋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WEA 회장 했던 사람이 트루스포럼이랑 어울려도 되냐?”며 비판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지혜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11. 복음주의 내부 개혁의 필요성 복음주의 진영 안에 좌경화된 흐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 안에서 개혁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흐름을 바로잡아야죠. 12. 로잔대회와 보수 진영의 개입 로잔대회에서도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한국대회에서는 동성애 문제 등에서 분명한 입장을 세우는 등 많은 것들이 바로잡혔습니다. 그건 소위 ‘근본주의자’들이 믿음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이분들이 “로잔은 타락했어”라며 선만 그었더라면,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13. 결론: 복음주의의 방향과 경계 중요한 건, 복음주의가 학문과 지성을 강조하다가 자유주의 신학과 가까워지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는 것, 그걸 우리가 인식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트루스포럼 월요모임 안내 ] 안녕하세요, 좋은 주말 보내고 계신가요? 6월 30일(월), 다음 주 트루스포럼 월요모임은 이진수 부대표의 특별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강연 주제는 <주한미군(USFK) 알아보기>입니다. 주한미군은 1950년 6.25 발발 직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한반도에 파병된 유엔군의 핵심이었고, 오늘날까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의 핵심 축, 한미동맹의 실체적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카투사로서 미군과 함께 군복무를 한 이진수 부대표와 함께 주한미군, 한미연합사, 유엔사의 의의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트루스포럼에 관심있는 분들, 강연 내용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함께 유익한 강연을 듣고, 모임 전 후로 즐거운 교제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일시: 6월 30일 (월) 오후 7시 장소: 트루스포럼 서울대센터 <오시는 길>
“진정한 민족주의자”라는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신화 로렌스 펙 | 2025년 6월 26일 원문 기사 보기: https://www.nkinsider.org/the-myth-of... 1919년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은 양국에서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크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은 조선과 중국 모두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이 퍼지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를 교묘하게 활용해 이상주의적인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비록 3.1운동과 5.4운동이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부르주아 운동'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민족 해방 투쟁으로 포장했습니다. 결국 많은 젊은 애국자들이 공산주의를 민족 독립의 수단으로 착각했고, 이것은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애국심을 내세우며 청년들을 선동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중국과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은 민족주의를 겉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외래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충실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흐름은 중국 공산당, 북한 노동당, 그리고 대한민국 내 친북 세력의 과장된 민족주의 선전 속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좌파 성향의 역사학자들과 언론인, 평론가들은 김일성과 마오쩌둥 같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는 단지 도구였고, 이들의 진짜 목표는 민족 독립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하며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국가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신화는 강하게 도전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 연구들은 중국과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과 지도자들이 실상은 진정한 민족주의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 공산주의 운동은 소련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과 조직, 외국 공산주의자들의 개입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이들은 모스크바에 있는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은 물론 동료 공산주의자들마저 배신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929년 소련이 중국을 공격했던 동청철도 사태에서 중국 공산당은 소련의 침략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지지했습니다. 조선에서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당시, 소련의 명령에 따라 조선공산당이 독립군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무장으로 소련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스탈린은 한인과 중국인을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량 학살과 강제이주를 시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충성스러운 공산당원들마저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보내졌고, 이러한 숙청에 조선공산당과 중국공산당도 협조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AB단 사건이라 불리는 내부 숙청이 벌어졌고, 조선에서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내부에서 '민생단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동지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일부 좌파 학자들은 김일성이 숙청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오히려 숙청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책임을 시사합니다. 또한 북한의 공식 기록과는 달리, 김일성은 만주에서 ‘독립적인’ 조선공산군을 이끌었던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중국공산당의 지휘 아래에 있었습니다. CCP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으며, 그의 활동 역시 코민테른의 노선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마오쩌둥 역시 CCP 거점이었던 옌안 시기 동안 소련의 정책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었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과 소련이 손을 잡았던 시기, CCP는 서방을 제국주의자로 몰아붙이며 독소 불가침조약을 지지했고, 1941년에는 일본과의 불가침조약도 공개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자국의 이익보다 소련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익을 우선시했습니다. 김일성과 그가 이끌던 부대는 1940년 말 무렵 만주에서 일본군과의 전투를 중단하고 소련으로 도피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일본군의 압박 때문으로 여겨졌지만, 이는 사실상 소련-일본 간의 외교적 협상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CCP와 일부 서방 좌파 학자들은 마치 중국공산당이 항일 전쟁의 주역이었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주력으로 싸웠으며, CCP는 후방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심지어 마오의 공산군이 일본군과 협력했던 정황도 다수 밝혀지고 있습니다. 북한과 좌파 역사학자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들과 협력했다며 비난하지만, 사실 김일성 정권의 내각에도 다수의 친일 협력자가 있었던 사실은 국내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 전쟁은 그가 '진정한 애국자'였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민족에게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1960년대 마오와 소련 간의 충돌, 김일성과 중소 양국 간의 마찰 역시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적·이념적 갈등이었습니다. 마오는 스탈린 이후 공산권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고, 김일성은 내부의 친소·친중 세력을 제거하면서 개인 권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결국 김일성을 '진정한 민족주의자'로 포장하는 주장은 단지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극좌 성향 세력, 특히 '민족해방(NL)' 계열은 반미·반일 감정을 이용해 김일성과 북한 정권을 ‘진짜 민족의 계승자’로 미화해 왔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국'이라 규정하고, 북한을 ‘순수한 민족 국가’로 떠받듭니다. 이러한 왜곡된 사고방식은 실제 정치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거 이석기의 통합진보당, 그리고 현재의 진보당은 NL 세력의 정치적 전진기지로 기능해왔습니다. 문재인, 이재명 전·현직 정치인들이 이들을 민주당 내부로 끌어들였고, 비례대표와 국회의원 후보로 추천하거나 고위직에 임명하는 방식으로 협력해왔습니다. 최근 선거에서는 아예 진보당과 공식적인 '연합전선'을 추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물론, 한미동맹에도 매우 심각한 위협입니다.
소위 '하나님 나라 신학'이 위험한 진짜 이유 – 왜곡된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OHk... 오늘은 많은 분들이 선하게 여기는 개념, 바로 ‘하나님 나라’ 신학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름만 들으면 참 아름답고, 신앙적인 느낌이 강하지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도록 하자.’ 얼마나 좋은 말인가요? 그런데 이 말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심각한 왜곡과 위험한 사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먼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은 정치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하자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구속사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통치, 복음을 통한 회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그 영역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순수한 개념이 현대 신학 속에서는 크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 19세기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점점 제거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기보다, 도덕적 스승, 혹은 사회개혁가 정도로 축소시켰지요. 그 결과,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하늘의 나라가 아닌, 이 땅 위에서 실현해야 할 '정의로운 사회'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사회 개혁, 경제 재분배, 계급 해방과 같은 사회주의적 주장과 맞닿게 됩니다. 복음은 더 이상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해방신학입니다. 1970년대 남미에서 시작된 이 신학은 예수님을 '가난한 자들의 해방자'로 이해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경제적 해방과 사회혁명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는 식의 주장이 퍼졌고, 그 중심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혁명가로 만드는, 참으로 위험한 왜곡이 일어난 것입니다. ---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등장한 복음주의 신학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참여를 강조하다 보니, 비슷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 실현이 곧 복음의 본질이다.” 이런 말들은 얼핏 보기엔 성경적이고 따뜻하게 들리지만, 사실상 사회주의적 논리와 결합되기 쉬운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이런 구조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은 구조적 죄다 → 자본주의는 악하다 → 정의를 위해 재분배가 필요하다’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교회 안에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이식하는 창구가 되고 맙니다. --- 이러한 흐름은 한국 교회 내에서도 이미 상당히 퍼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감리교와 NCCK, 그리고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이름으로 노동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있지요. 심지어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목소리까지도 ‘하나님 나라’라는 이름 아래 등장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 이후에야 완전하게 도래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그것을 완성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이상국가 – 바벨탑 건설과 같은 교만한 프로젝트에 불과합니다. --- 복음은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운동’이 아닙니다. 복음은 먼저 개인의 회심을 통해 시작됩니다.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그 변화가 가정과 공동체를 거쳐 사회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의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켜내는 싸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지가 우리 교회, 다음 세대,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의 영적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수호하는 여러분, 그 자리에 함께 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함께 분별하고, 함께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는 풍경이다. 아둥바둥 살아가는 인생의 작은 점들이지만, 언젠가 멀리서 돌아볼 때 이 모든 순간이 이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지난날들이 아름답고 찬란한 눈물의 빛으로 물들어 있듯이
언론의 거짓말 지겹습니다. 매경이 이서진 학생을 가짜 서울대생이라고 선동합니다. 이서진 학생은 영문과 재학생입니다. 현재는 기사를 내린듯. 저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동안 거짓말로 얻어 온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을 거짓말로 모면하면, 처벌이 아니라 보상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김대업의 거짓말로 김대중이 당선됐고, 광우병 거짓말로 이명박 정부를 마비시켰고, 무수한 거짓말로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거짓말 한 사람들에게는 처벌이 아닌 보상이 주어졌습니다. 광우병사태 거짓 선동에 앞장 선 MBC PD 수첩의 최승호를 비롯한 제작진들. 그들은 처벌이 아닌 상을 받았습니다. 최승호는 문재인 정권에서 MBC 사장으로 영전했습다.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는 거짓의 고리들. 이번에 부셔버려야 합니다.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거짓말도 자꾸 말하면 사실처럼 각인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론의 권위를 가지고 전파되는 거짓말은, 대중을 속이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이제 이 거짓의 고리들을 깨뜨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