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소망을 담은 픽션, 『통일로 가는 한반도 스케치: 북한편』

통일은 결국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 질 것
김의경 연구위원 통일 영상/에세이 공모전 출품작

 

통일은 머지 않은 미래입니다. 소망을 품고 준비해 나아가야할 숙제이고,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에는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떠한 통일이 될 것인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준비된다면 통일은 결국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기대하며 통일의 소망을 담은 글을 한 편 소개합니다. 연세대 트루스포럼 김의경 박사의 픽션입니다.

 

지금도 고통 받는 북한의 주민들과 북한 동포들의 해방을 향한 이승만 대통령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이 픽션이 현실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통일로 가는 한반도 스케치: 북한편

 

 

 

2027년 10월 17일 청진

 

100미터 밖에서도 훤히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큰 텔레비죤 같은 것이 청진 장마당에 들어섰다. 전국의 웬만한 장마당이나 기차역에 다 설치되었다는데, 전기가 부족하다나니(보니) 이동식 발전기도 함께 들어왔다. 남조선 텔레비죤 앞에는 넓고 푹신푹신한 고무 자리도 깔렸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종일토록 가득 앉아 대형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남조선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선명한 화면을 통해 남조선과 세계 여러 나라를 보여주니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중간중간 나오는 남조선 ‘광고’ 라는 것은 짧고 재미있다.

 

전에 숨어서 보던 남조선 드라마나 영화에는 배우들만 나왔다면, 요즘 장마당에서 보는 방송에는 일반 남조선 사람들이 나와서 뭘 먹고, 어떤 집에서 사는지, 일하는 곳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준다. 남조선이 잘산다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어떻게 잘 사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고, 우리가 얼마나 낙후한지도 알 것 같다. 남조선 방송을 보니 길에 차가 너무 많아 저녁시간이면 도로에 빨간 불들이 빼곡하다. 전에 남조선 라디오방송에서 명절에 도로가 막힌다고 해서 무슨 뜻인가 했었는데 이제 보니 모두 사실이었던 것 같다. 더 신기한 것은 영화 속 배우가 아닌 일반 녀자들도 자기 차를 운전해 다닌다는 것이다. 남조선이나 서양에서는 녀자가 운전하는 것이 전혀 새롭거나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종일 남조선 방송을 틀어주니 우리는 앉아서 수십년간 못한 바깥 세상 공부를 한순간에 하는 느낌이다.

 

작년 12월초 장성한 아들 없이 장군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당중앙위원회가 급하게 장례식을 준비했고, 애도기간 후에는 비상회의로 계속 모인다고 하더니 올 봄부터는 서양 사람들이 국제련합(유엔)군과 함께 평양에 밀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고심 끝에 중국이 아닌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개혁개방으로 나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로동신문에 등장한지 몇 개월 만이다.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던 미제 승냥이 원쑤(원수)들이 유엔의 이름으로 평양에 들어왔건만, 그리고 남조선 괴뢰들도 미군 뒤에 숨어 은근슬쩍 들어왔지만, 대형 화면을 통해 본 평양은 예나 지금이나 이름처럼 평화롭다. 유엔군이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고 당과 군의 안내를 받아 장군님이 숨겨놓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빠짐없이 찾았다는 소식도 남조선 방송에서 들려주었다.   

 

밥 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대형 텔레비죤 앞에서 벤또(도시락)를 꺼내 먹고, 나처럼 집이 가까운 사람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나온다. 림시주민위원회에서 유엔 다국적군이 가져다준 쌀을 토요일마다 나눠주는데, 쌀알이 김정은 장군님 시절 장마당에서 사먹던 것보다 훨씬 크고 맛도 아주 달다. 이팝(쌀밥)이 뭐길래, 장군님 사망 후 남쪽으로 넘어가보려던 우리 동네 젊은이들은 집집마다 인원 수를 확인해 쌀을 배급한다는 말에 꼼짝없이 동네에 붙들려 있는 형국이다. (남조선 쪽에서 계속해서 국경을 봉쇄하고 있어 북쪽에서 남조선으로 넘어가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수십년간 세분의 수령님이 그렇게 ‘이팝에 고기국’ 노래를 부르셨는데, 남조선과 미국 덕분에 인민들이 질 좋은 이팝을 이렇게 자주 먹게 된 것을 아신다면 뭐라 하실까. 쌀은 남조선에서 온 것 같은데, 쌀포대에는 ‘UN’ 이라고만 적혀 있다.

 

날이 서늘해지면서 따뜻한 옷과 담요도 청진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담요는 북구라파(북유럽)나 카나다(캐나다) 등 좀 멀리 떨어진 유엔 회원국들이 보내주는 것이고, 옷가지는 남조선과 일본 등 가까운 곳에서 온다고 한다. 새 옷은 아니지만 특히 남조선에서 왔다는 겨울옷은 얼마나 따뜻한지 옷에 달린 털모자까지 푹 뒤집어쓰면 아직 가을이라 그런지 속에서 땀이 날 정도다. 남쪽은 뭐가 추워서 이렇게 두툼한 겨울옷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청진 기차역 앞에 고아원 건축이 시작됐다. 공사장 앞에 붙어 있는 ‘건축예상도’를 보면 내가 들어가 살고 싶을 만큼 깨끗하고 훌륭한 집이 될 것 같다. 고아원 건축 사업을 주도하는 조선인 교포들이 공사일꾼들에게 딸라(달러)를 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새벽부터 공사장 앞에 긴 줄이 생긴다. 공사장 관리인은 30년 전 고난의 행군 때 중국으로 뛰었다가(도망갔다가) 남조선까지 가서 대학도 졸업하고 이제 다시 청진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남조선 물이 좋은지 또래 동무들보다 10년은 젊고 하얀 얼굴을 하고 와서는 앞으로 다른 공사도 많을 거라며 일을 못 받아 어깨가 축 처진 사람들을 위로하며 돌려보냈다.

 

 

2028년 4월 17일 평양

 

오랜만에 평양 언니집에 왔다. 줄지어 만경대에 걸어 올라가 수령님, 아니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고, 금수산기념궁전에 누워 있는 시신에게 허리 굽혀 천천히 절하던 때가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많던 동상들도, 주체사상탑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수대 언덕배기에 있던 김일성, 김정일 동상은 너무 커서 소련 무너질 때처럼 밧줄로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성격 급한 사람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폭탄을 가져다가 일찌감치 폭파시켜 버렸다. 세상이 뒤집히고 나니 동상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없고, 힐끗 보다가 침을 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버린다.

 

만수대 쌍동상 외에도 동네 입구마다 서있던 김일성, 김정일 동상과 석상, 김일성혁명사상연구실 석고상 등 그 일가의 형상을 한 조각상이나 그림은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수가 10만점을 훨씬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집마다 붙어 있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는 떼었다가 다시 붙인 집도 있는 것 같다.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하던 인민반장들도 사라져 각 가정에 들어가 확인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오늘 낮에 탔던 전차에는 한 늙은이(할아버지)가 김일성 김정일 휘장(배지)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 서있던 젊은이가 아직도 지겹게 그걸 달고 다니냐며 휘장을 낚아채는 바람에 늙은이 옷이 찢어지고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승객들은 모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양종합대학’으로 이름이 바뀐 김일성종합대학 기숙사에는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서 석방된 정치범들이 거의 여섯달째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작년 가을 련합정부당국에서 정치범 32만명을 간략하게 조사한 후 석방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도립, 시립병원에 나눠져 신체검사를 받은 후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 중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출신 지역 주요 대학 기숙사에 수용되었고,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정부 지정 병원에 수용되거나 국제적십자사 주선으로 미국, 구라파, 일본 등 선진국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남조선 사람들에 비해 우리 북쪽 사람들은 대부분 10센티 이상 작고 마르고 볕에 그을러 얼굴도 검은데, 정치범들은 훨씬 더 못 먹고 혹사를 당해 평균적인 북조선 사람의 모습도 아니다. 그 중에서도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들만 골라 외국에 보냈으니 그곳 사람들이 그 정치범들의 몰골에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주택 부족이 심각해 대학 기숙사에 수용된 정치범들은 한동안 기숙사에 있을 것 같다. 김일성의 간부 양성소였던 김일성종합대학에서도 정치범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다니 김일성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2029년 4월 17일 평양

 

1년만에 평양 언니집을 다시 찾았다. 대동강은 여전히 악취를 풍기면서도 유유히 흐르는데 대동강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들은 모두 사라졌다. 전시용으로 은퇴 당원들을 조직해 낚시꾼 흉내를 내게 했던 로동당이 사라졌으니 똥물에서 한가하게 낚시할 정신 나간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매주 진행되던 조직생활총화도, 정치학습도 없어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불러내던 각종 로력동원도 사라지니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불러주는 곳이 없어 조금 울적해지는 것은 혁명의 심장부였던 평양 사람들이 청진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할 것이다.

 

언니는 군대간 둘째 조카가 휴가 나온다는 소식에 음식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작년 여름 조선인민군은 해산되었지만 제대한지 10년이 안된 제대군인이나 군대 해산으로 갑자기 집으로 돌아간 군인들은 원하면 누구나 공병 등으로 재입대가 가능해져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련합정부군에 입대와 재입대를 하였다. ‘영실군’(영양실조군대)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강도짓을 하던 군인들이, 이제는 잘 먹고 작은 봉급도 받고 운동도 많이 하니, 군대 가서 키가 몇 센티씩 자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조중(북중)국경을 지키는 부대 외에는 대부분 도로 등 토목사업이나 농지 정리사업을 하게 되는데, 힘든 작업이지만 예전처럼 맨손, 맨몸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 각국에서 보내준 장비가 좋아 조카는 힘든 줄 모르고 군생활을 한다 했다. 또 원하는 사람은 저녁 시간에 남조선에 살다 온 ‘탈북인’ 전문가들로부터 남조선식 직업 교육도 받고 남쪽 얘기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리유(이유)야 어쨌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원 입대나 재입대가 인기이다.

 

 

2029년 10월 17일 청진

 

김일성은 80년대에 도로가 잘 갖춰진 동구라파를 다녀와서는 우리 조상들은 도로도 깔지 않았다며 선조들을 타박했다는데, 김일성도 부러워할 만한 도로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1965년인가 남조선은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것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경제 발전을 시작했다고 남조선 텔레비죤에서 보았고, 그와 비슷하게 우리도 이번에 일본이 준 보상금으로 도로 공사를 시작하니 수령 시대에 일본과의 합의에 실패한 것은 하늘이 도운 일이었다. 우리 나라는 철도, 전기 시설 등 모든 기간시설이 너무 낙후하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아직도 고쳐가며 사용하는 곳도 많다. 그래도 오히려 심하게 낙후하니 아무 미련 없이 훌 밀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남조선에 살던 탈북자 부부가 아기와 함께 청진에 돌아왔다. 젊은 남자는 ‘아기띠’라는 것을 리용(이용)해 아기를 몸에 붙여 안고 가고, 녀자는 가방 하나 들고 남자 옆에서 걸어가는데, 그 뒤로는 동네 아이들이 이 남녀와 아기띠 속에서 잠든 아기를 보려고 졸졸 따라간다. 북조선에서는 보통 남자는 저 멀리 담배를 물고 걸어가버리고 녀자는 아기를 업고 짐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남편을 따라가는데, 남조선 풍습이 우리와 다르기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2030년 10월 17일 평양

작년까지만 해도 평양에는 유엔 평화유지군 외에도 국제원조기구 사람들, 외국 투자자, 그리고 각종 종교단체가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전기도 자주 끊기고, 변소 등 불편한 생활 환경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업으로 돈 좀 벌어 보려던 투자자들은 못 버티고 거의 다 떠났고, 지금은 국제원조기구 사람들과 일부 기독교 선교사들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련합정부군의 공병대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도로공사를 시작했지만, 발전소나 상하수도 등의 기반 시설 건설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다. 이동식 변소가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면 하루 종일 손을 씻을 곳이 없는 평양에서 외국인들은 ‘물티슈’라는 하얀 물수건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련합정부가 유엔 감독하에 인민, 아니 ‘국민’의 대표를 뽑는 ‘의회선거’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로동당은 해산되었지만 련합정부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며 도움을 준 사람들은 대부분 로동당원 출신들인데 이중 일부가 의회선거를 염두에 두고 최근 민주당을 만들었다. 또,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했던 부류 중 남한을 떠나 북쪽으로 돌아온 이들도 최근 자유국민당을 창당했다. 그래서 10월 25일 총선에서는 민주당과 자유국민당 후보들이 대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를 한다고 여기저기 벽보가 붙고, 텔레비죤에서도 이런 저런 토론이 많이 나오지만 사람들은 선거보다는 좋은 직장 찾는 일에 관심이 훨씬 많아 보인다. 남조선 등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김정은 사망 이후 기본적인 식량이 공급되고는 있지만 남조선 방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배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양외국어대학 출신인 우리 둘째 조카는 미국문화원에 통역으로 들어가 일을 하는데, 정치학습이나 조직생활이 없는데도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면 서양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게 일하는지 알 것 같다. 남조선에서 파견 나온 상사만큼은 아니어도 조카의 딸라 월급은 남들의 두세배 가치는 되어서, 언니네 가족은 조카 월급으로 부식을 넉넉하게 사먹고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언니네는 내가 평양에 올 때마다 반겨주고, 조카가 가져온 많은 신기한 미국 제품도 챙겨준다. 조카가 문화원에서 야근을 하는 날에는 숙소에서 ‘샤워’ 목욕을 할 수 있는데, 천장에 작은 구멍이 수십 개 뚫려 있고 그 구멍에서 따뜻한 물이 소나기처럼 나오면, 그 물로 씻는 샤워 목욕이 그렇게 따뜻하고 좋아서 조카는 야근 순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모양이다.

 

10월 25일 선거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우선 자유국민당은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고, 탈북해서 남조선에 살다가 온 자유국민당 후보들보다는 민주당 후보들이 년륜(연륜)이 있어 보여서인지 아니면 로동당에 대한 공포심이 아직 남아서인지 아무튼 민주당이 조금 더 인기가 있었다. 유엔과 련합정부는 의회에서 총리가 선출되고 정부가 구성되면 더 많은 권한을 새로운 정부에 넘길 예정이지만 그 이후에도 련합정부군은 유엔 평화유지군에 흡수되어 치안유지를 할 것 같다.

 

한편 문서대국이었던 수령시대 공화국 기밀문서 일부가 공개되면서 남조선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남조선에 있으면서 비밀리에 로동당에 가입했거나 남한 가족 모르게 평양에서도 가정을 꾸리게 된 정치인, 종교인들의 이름과 배경 등이 언론을 통해 낱낱이 보도된 탓이다. 당사자들의 부인(否認)에도 불구하고, 많은 늙은 남자 정치인들이 부인(婦人)에게 소위 ‘황혼 이혼’이란 것을 당했다는 소식이 북한 장마당까지 파다하다. 김정일, 김정은이 남조선을 공갈 협박하려고 만든 핵무기라는 것은 알고 보니 조잡하기 짝이 없고, 대량 생산 근처에도 못간 영원한 실험용에 불과했다면, 남조선에 살면서 수령들에 협조하고 부역했던 남한 사람들의 명단 공개는 남한을 강타한 그야말로 핵폭탄이 된 것이다.

 

 

2031년 10월 17일 청진

 

의회는 개헌을 통해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북한공화국(Republic of North Korea)으로 바꾸었고, 이제는 누구라도 신청을 하면 려권(여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취업비자로 남조선뿐 아니라 일본, 미국, 구라파로 갈 수 있는 길도 열리는 모양이다. 또, 유엔의 김일성반인륜범죄조사위원회와는 별개로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김일성일가범죄조사위원회 설립에 대한 법도 곧 통과된다고 한다.

 

청진에도 많은 외국, 그리고 남조선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조선에서 아직 국경봉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지만 관광비자로 남조선 사람들도 북쪽에 올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관광 상품이 생겨 평양뿐 아니라 지방에도 남한 려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쪽 사람들에게는 ‘수령특각견학’이라는 것이 인기인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각각 사용했던 (이들은 부자간에도 별장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장을 둘러보고 각각의 수령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맛보는 려행 상품이다. 서양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를 많이 찾는 편이다. 정치범으로 과거에 복역했던 사람들이 관광 지도원(투어 가이드)으로 과거 수용소 생활을 설명해주면 관광객들은 눈물과 콧물은 기본이고 구토까지 해가며 듣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수용소 주변에는 시신 발굴 작업도 한창이다. 어떤 남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수령시대에 북한 전체가 ‘거대한 시체안치소’가 되었으니 정치범 수용소 주변은 말할 것도 없다.

 

또다른 관광 상품은 리산가족 상봉 덕분에 만들어졌다. 남조선과 일본 정부와의 협력으로 리산가족들이 평양을 거쳐 고향을 방문해 이곳 가족들과 정해진 일정으로 2박 3일을 보내고 나면 추가적으로 북한 가족들과 함께 백두산이나 금강산 등 북한의 명산을 려행하는 상품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수령 시대에는 ‘관광’이라는 단어도 거의 쓰이지 않았고, 려행이란 것이 아주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관광 상품은 북한 사람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있다. 그리고 말이 리산가족이지, 생존해 있는 1세대는 너무 고령이어서 가족 상봉은 주로 리산가족의 자녀 세대간에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자녀들은 서로 초면이어서 아무래도 어색함이 있는데, 려행을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것이다. 깊은 산속 바위에까지 붉고 큰 글씨로 새겨 놓았던 수령 우상화 문구들도 남조선 기술 덕분에 모두 제거되어 리산가족들이 사진 찍을 맛이 날 것 같다.

 

외부 식량 원조로 사람들의 영양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학교는 회복이 더딘 편이다. 수령시대에 배우던 교과서는 과목과 상관없이 우상화 내용이 너무 많고 날조조작도 심각해 사용이 중단된 지 오래고,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학교를 떠난 교사도 많기 때문이다. 남조선 각급학교에서 보내주는 교과서가 있지만 거기는 교과서 종류가 한 학년에 열 가지는 되어서, 남한 교과서는 도착하는 대로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시점에 결국 변소 뒷일에, 또는 부뚜막 불쏘시개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에 들어갔다고는 해도 교과서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하고, 교원들도 새롭게 교육시키려면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다. 북한 학교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사이, 조선인 해외 교포들이 종교단체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영어학교가 대도시부터 생겨나 학생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청진에도 소학교 아이들을 위한 영어학교가 하나 생겼는데, 몸집이 큰 고등중학교 아이들까지 중간중간 끼어 앉아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2034년 10월 17일 평양

 

평양의 분주소(경찰서)에서 남한 방문을 위한 려행비자 발급을 시작했다. 아직은 단체관광만 가능한데, 서울과 제주도가 가장 인기가 많고, 김일성 일가가 탐냈던 남해 한려수도 관광 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던 수령시대를 떠올리며 ‘북한도 모르면서 한가하게 무슨 남한 타령이냐?’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도 많다. 수령 통치 80여년간 뒤처진 것을 따라잡고, 남한 사람들 입에서 그 듣기 싫은 ‘값싼 노동력’ 소리 안 듣고, 언젠가 대등하게 앉아 조국통일 얘기도 하려면 놀러갈 시간이 있냐는 것이다. 그래도 젊은 세대들은 남한 관광도 하고, 그곳에서 배울 것은 배우면서 조금 여유를 가지고 가는 게 뭐가 나쁘냐며, 남한에 가서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며 퍼나르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남한 려행이 못마땅한 어른들도 그 사진들은 열심히 들여다보신다.

 

4년만에 의회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 선거 전에 물어보는 ‘여론조사’라는 것이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번 선거에는 자유국민당이 민주당을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위 ‘샤이(shy) 자유국민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했을 수도 있어 탈북인 출신이 많은 자유국민당이 민주당을 크게 이길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청진에도 없는 참새가 평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언니와 형부도 평양에서 새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한다. 외국 사람들이 키우던 고양이 몇 마리가 집을 탈출해 짝짓기에 성공했는지 가끔 길에 고양이 가족도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고양이가 나타난 것도 신기하지만 잡아먹히지 않는 것은 더 신기하다. 세상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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